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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약한영웅 Class 1》 리뷰] 폭력의 세계에서 지성을 무기로 삼은 진짜 ‘약한’ 영웅

by 서사원님 2025. 6. 11.

주인공의 알 수 없는 의미를 담고 있는 눈빛이 어떤 사연이지 궁금하게 하는 눈빛이다.

 

 

✅ 서론

최근 수많은 청춘 드라마가 쏟아지는 가운데, 2022년 공개된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약한 영웅 Class 1〉**은 한층 다른 결을 지닌다. 이 작품은 학원 폭력이라는 익숙한 테마를 다루지만, 그것을 단순한 피해와 가해의 이분법이 아닌, 구조적 폭력의 실체와 인간 내면의 분열로 확장시킨다.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드라마는, ‘신체적 약자’가 어떻게 심리와 전략, 관찰력과 냉정함을 무기로 삼아 살아남는가를 다룬다.
주인공 연시은(박지훈)은 체격도 작고 말수도 적은, 존재감 없는 고등학생이지만, 그 내면에는 누구보다도 단단한 생존 본능과 철저한 거리감이 자리 잡고 있다.
《약한 영웅》은 그가 처한 현실과 그가 택한 방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되는 인간관계의 불안정성과 신뢰의 붕괴를 통해, **‘진짜 강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약자의 복수가 아니라, 외면당한 존재가 강해지는 과정에서 겪는 감정의 해체 기라는 것을.


🔍 본론

1. ‘약하다’는 것이 무능함이 아니라는 선언

연시은은 학원물의 전형적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운동 능력도 없고, 유쾌하지도 않으며, 관계에 서툴다. 그러나 그는 상황을 관찰하고, 계산하며, 심리를 파악하는 데 탁월한 두뇌형 캐릭터다.
그는 언제나 공격보다는 반응을 택하고, 정면충돌보다는 심리전과 정보전으로 싸운다.
이런 점에서 《약한 영웅》은 기존의 학폭물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폭력의 방식 자체를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갈등을 피하고 싶어 하는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다.
하지만 친구 수호와 범석, 그리고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구조적 폭력과의 충돌 속에서, 그는 끝내 싸우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여기서 ‘싸움’은 단지 생존을 위한 반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정체성의 발로다.


2. 폭력의 계보학 ― 학교는 하나의 사회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폭력은 단지 ‘학생들 간의 괴롭힘’ 수준이 아니다.
이 작품은 매우 정교하게 폭력의 확장성, 재생산 구조, 상하 권력관계를 묘사한다.
상급생은 하급생을 지배하고, 이권을 위해 폭력을 조직화하며, 선생님들조차 이 체계 안에서 모른 척하거나 회피한다.

학교라는 공간은 단지 교육의 장이 아니라, 작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곳엔 권력이 있고, 방관이 있으며, 그 속에서 연시은처럼 약자인 이들이 싸움에 내몰리는 구조가 있다.
《약한 영웅》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그 폭력의 구조를 ‘감정적 충돌’이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으로 설계된 무의식적 동의 체계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3. 고립된 존재의 선택 ― 친구란 무엇인가

시은은 처음에는 철저히 혼자였고, 인간관계를 경계했다.
그러나 수호(최현욱)와 범석(홍경)이라는 친구를 만나며, 관계의 가능성, 신뢰의 의미, 공동체의 온기를 경험한다.
그러나 이 관계는 깨진다.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처럼, 관계는 갈라지고, 친구는 상처받고, 시은은 다시 혼자가 된다.

이 지점이 이 드라마의 진짜 뼈아픈 부분이다.
우리는 시은이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지만, 그의 성장은 곧 감정의 소멸과 인간에 대한 불신의 축적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더 강해졌지만, 더 외로워졌다.
그의 싸움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끝에 가서는 누구도 믿지 않기 위한 방어 기제로 바뀐다.

이 드라마는 말한다.
진짜 약자는 약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함께 싸워주지 않기 때문에 약한 것이라고.


💡 결론

《약한영웅 Class 1》은 우리가 흔히 소비하던 학교폭력 드라마의 문법을 뒤흔든다.
이 작품은 피와 폭력이 난무하는 액션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를 무기로 삼는 내면의 전투를 그린다.
연시은이라는 인물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주변을 경계하며, 생존 전략을 계획하는 캐릭터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단지 그의 싸움 실력이 아니라, 외로움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고요한 분투다.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시은은 친구 수호, 범석과의 유대 속에서 미세하게 변화한다.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뛰고, 함께 웃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관계는 곧 깨진다.
신뢰는 배신으로, 우정은 오해로 바뀌고, 결국 시은은 더 큰 단절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그가 선택한 ‘강함’은 보호막이자 벽이 되었고,
결국 아무도 가까이 다가올 수 없는 존재로 자신을 고립시킨다.

이 결말은 흔한 ‘성장 서사’와는 정반대다.
시은은 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감정을 죽이고, 관계를 끊고, 살아남는 방법만을 기억하는 존재가 된다.
그의 승리는 ‘패배를 피한 생존’이지만, 동시에 감정적 패배이자 인간적 상실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그래서 깊이 아프다.
우리가 시은을 응원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것들은, 우리 모두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포기해 버린 무언가와 닮아 있다.
진짜 약자는 누구인가?
힘이 없는 자일까, 아니면 감정을 숨긴 채 혼자 버티는 사람일까?

《약한영웅》은 끝내 말하지 않다.
누가 옳고, 누가 이겼는지를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만을 남긴다.
"당신은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조용히 외면하는 방관자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연시은에게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학교, 사회,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향해 있다.

《약한 영웅 Class 1》은 그래서 단순한 청소년 액션물이 아니라,
감정의 벽을 쌓으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백서이자, 관계를 잃은 시대의 자화상이다.
이 작품은 마치 조용한 외침처럼 말한다.
“세상은 강한 자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함께 견디는 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