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2009년 연재를 시작해 2021년 완결된 만화 《진격의 거인》(進撃の巨人)은 단순한 다크 판타지 만화를 넘어, 21세기형 인간 존재의 본질과 문명 구조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거인’이라는 상징적 존재를 통해 인간의 공포, 정치, 역사, 전쟁, 차별, 자아의 해체 등 다층적 문제를 통찰하며, 단순히 선과 악의 구도를 뒤흔든 것이 아니라, 그 구도 자체의 무의미함을 증명해낸 작품이다.
이사야마 하지메 작가의 장기 연재작인 이 만화는 초반에는 폐쇄된 세계에서 벌어지는 생존 서사로 시작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세계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초점은 ‘거인과 싸우는 인간’에서 ‘인간 안에 있는 괴물’로 이동한다.
《진격의 거인》은 전 세계적으로 젊은 독자들의 열광을 얻었으며, 특히 한국에서도 높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작품은 일본의 과거사, 제국주의, 현대 내셔널리즘, 그리고 인류 공동체의 불가능성에 대한 메타포로 읽힌다. ‘괴물은 밖에 있는가, 아니면 우리 안에 있는가?’라는 질문은, 지금도 전 세계 독자들에게 깊은 사유를 남긴다.
🔍 본론
1. “인간이 괴물을 만든다” ― 악의 기원에 대한 근본적 질문
작품 초반에는 ‘거인 = 적’, ‘인간 = 피해자’라는 흑백 이분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확장되면서, 거인은 인간이 만든 존재이며, 주인공 에렌조차 괴물이 되어간다는 반전이 등장한다. 이 점은 독자에게 강렬한 충격을 안기며, 도덕적 상대성과 정의의 해체라는 주제를 부각시킨다.
에렌은 처음엔 어머니를 잃은 피해자로서 정의로운 복수자였지만, 후반부에는 인류 절반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학살자로 변한다. 그는 "자유를 위해선 선택의 대가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희생을 정당화하는 독재자형 영웅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나는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라는 현대인의 정체성 혼란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2. “우리가 알던 세계는 너무 작았다” ― 국경과 정체성의 붕괴
작품의 또 다른 핵심 메시지는 **"우리가 믿어왔던 세계는 하나의 벽 안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진실이다. 에르디아 왕국의 삼중 성벽은 물리적 보호막이 아니라 정보의 통제, 진실의 은폐를 상징한다.
이 설정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 세계가 경험한 국경 폐쇄, 정보 차단, 집단 불신과 맞닿아 있다.
또한, 에르디아와 마레라는 두 민족의 역사적 대립은, 유대인-팔레스타인, 일제-아시아 침략사, 나치-홀로코스트 등 세계 현대사에서 반복되어온 억압과 반격의 순환 고리를 은유한다.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는 관점에 따라 뒤바뀌며, 이 구조는 단 하나의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강조한다.
3. “거인은 무기가 아니라 상징이다” ― 대량살상무기의 메타포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9명의 지능형 거인’은 단순한 힘의 상징이 아니다. 이들은 국가가 보유한 **핵무기, 생화학무기, 정보무기(WMD)**를 상징한다.
즉, 이 거인들은 무력의 우위, 문명의 파괴력, 그리고 인간이 통제하지 못하는 파괴 본능의 결정체다.
일본의 사회학자 오사와 마사치는 《진격의 거인》을 “21세기판 핵무기의 비유이며, 인류의 자기 파괴 충동을 집약한 이야기”라고 분석했다. 특히 고질라가 원폭의 은유라면, 진격의 거인은 현대적 ‘국가 폭력과 이념 충돌’의 은유다.
에렌이 스스로 거인이 되어 세계를 파괴하는 서사는, 어느 국가나 집단도 절대적 정의가 될 수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 결론
《진격의 거인》은 단순히 잘 만든 만화가 아니라, 현대 사회를 반영하고 예언하는 거대한 사유의 공간이다. ‘거인’이라는 존재는 인간보다 더 큰 존재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의 거대화된 욕망과 공포이며, 이야기가 끝날수록 그 본질은 외부가 아닌 우리 안에 존재하는 괴물성으로 귀결된다.
이 작품은 마지막까지 답을 주지 않는다. 에렌은 악당으로 죽지만, 그것이 평화를 의미하진 않는다. 우리는 그 결말을 보며 안심하기보다, “진짜 괴물은 누구였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21세기의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진격의 거인》은 국가, 권력, 윤리, 개인, 역사, 진실이라는 모든 개념을 흔들며 말한다.
“정의란 누군가의 입장일 뿐이며, 인간은 언제든 괴물이 될 수 있다.”
그 무거운 진실을 마주한 지금, 우리는 진짜 성벽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되었을까?2009년 연재를 시작해 2021년 대단원의 막을 내린 만화 《진격의 거인》은 단순한 다크 판타지 장르를 넘어, 21세기 인간의 정체성과 집단 기억, 역사적 죄책감까지 껴안은 거대한 철학적 서사였다.
초반에는 거인이라는 절대 악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처럼 보였지만, 이야기가 진전될수록 ‘거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은 과연 선한 존재인가’라는 더욱 근본적인 물음으로 확장된다.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는 이 만화를 통해 전쟁, 폭력, 제국주의, 집단 이데올로기와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주제를 날카롭게 파고들며, 독자를 단순한 선악 구도에서 해방시켰다.
특히 주인공 에렌의 변화는 이 작품의 핵심 철학을 상징한다. 어머니를 잃은 소년은 복수를 향해 돌진하고, 결국에는 인류 절반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괴물이 되어 죽는다. 독자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정의란 무엇인가', '희생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나는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놓인다.
《진격의 거인》은 그 어떤 명쾌한 해답도 제시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현대적이다. 거인의 정체가 외부의 괴물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만든 시스템과 기억, 그리고 증오의 유산임을 드러내는 순간, 이 작품은 단순한 만화가 아닌 철학적 사유의 장으로 진입한다.
결국 이 작품은 괴물의 탄생이 거인의 탓이 아니라, 거인을 만든 인간의 두려움, 역사 왜곡, 그리고 끊임없는 폭력의 순환 고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에렌은 처음에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고, 끝내 괴물이 되었다.
그러나 《진격의 거인》은 말한다. “에렌이 괴물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에렌이 될 수 있다”고. 그 말은 역사의 피해자가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으며, 반대로 가해자에게도 선택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진격의 거인》은 이야기의 종결이 아니라, 질문의 시작이다.
선과 악의 경계는 무너졌고, 영웅은 사라졌으며, 평화는 결코 순수하지 않다.
이 작품은 성 안의 벽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속에 쌓아온 벽을 허물기 위해 존재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이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은 성벽 안인가, 성벽 밖인가?”